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튀르키예 독립전쟁 (문단 편집) == 종전 후 == 로잔 조약에 따라 동트라키아, 스미르나는 정식으로 튀르키예에게 되돌아왔으나 [[에게 해]]의 섬은 튀르키예 영토의 코앞에 있는 것까지 죄다 그리스에게 넘겨주고 말았다. 현대 튀르키예 영토의 코앞에 있는 섬들까지 그리스 영토가 된 것은 [[튀르키예 해군]]이 약하기 때문만은 아니다. 튀르키예와 그리스의 현재의 국경선이 설정된 것은 제1차 세계 대전 직후이며 오스만 제국이 세계대전에서 패배, 항복한 뒤 코스탄티니예에 진주한 협상국의 우두머리인 영국 고등판무관이 전쟁을 지켜보다가 그리스군이 튀르키예군에게 져서 에게 해로 밀려나자 궁지에 몰린 그리스군을 구하고 전쟁이 확전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생 튀르키예 정부에 연락해 동트라키아 아니면 에게 해의 섬들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제안하자 튀르키예 정부가 동트라키아를 선택해서 에게 해가 그리스 영해가 된 것이다. 이 때문인지 이 지역의 영해 범위를 놓고 튀르키예와 그리스 사이에 영토 분쟁을 벌인다고 한다. 또 튀르키예는 튀르크계가 일부 분포하고 있는 [[키프로스]] 역시 포기했다. 이는 이후 키프로스 분단과 [[키프로스 전쟁]]을 초래하였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460px-Memory_of_Victory%2C_1925.jpg]] [[1925년]]에 독립 기념으로 제작한 아타튀르크와 그의 전우들의 사진이 담긴 포스터 협상국은 코스탄티니예에서 철수했으며 [[오스만 제국]]의 마지막 [[파디샤]] [[메흐메트 6세|메흐메트 6세 바히데틴]]은 영국 군함에 올라타 [[몰타]]로 망명을 떠났다. 무스타파 케말은 협상국에 이용당하던 제국 정부를 '튀르키예 민족의 반역자'로 규정했으며 때문에 공화국 건국 이후 오스만 제국의 황족들은 죄다 국외추방당하는 신세가 되었다. 이후 [[1923년]] [[10월 29일]]에 대국민의회는 [[공화국]]을 선언하며 오늘날의 튀르키예 공화국을 건국하고 이 전쟁의 가장 큰 공로자이자 총사령관인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를 공화국의 초대 [[튀르키예 대통령|대통령]]으로 세웠다. 그리고 코스탄티니예는 [[이스탄불]]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수도(행정구역)|수도]]도 이스탄불에서 앙카라로 이전되었다. 한편 [[가지안테프|가지안텝]] 옆에 위치한 작은 지역인 [[하타이]](Hatay, 안타키아(Antakya)라고도 부름)는 [[튀르키예인]]이 다수인 지역임에도 전후 프랑스의 [[위임통치]]령인 [[시리아-레바논]]에 자치주 형태로 속해 있다가 [[1938년]] [[9월 7일]] 하타이국(Hatay Devleti)이라는 이름으로 독립을 선언하고 1년 후인 [[1939년]] [[6월 29일]]에 국민투표를 통하여 튀르키예와 합병해 오늘날의 국경을 갖추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